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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들

Comrades

카나스 리우 – 홍콩 – 2019 – 15분 – 다큐멘터리 – 광둥어 – 한국어자막, 한국수어영상

 

 

작품 줄거리

거리에는 최루탄 연기가 자욱하고 방독면과 마스크, 고글 등을 쓴 검은 옷의 사람들이 함께 구호를 외친다. 무장을 한 경찰들은 이들을 향해 무력을 행사한다. 이들 중 누군가는 카메라를 들어 기록을 남기고 누군가는 최전선의 동지들을 돕기 위해 앞으로 나아간다. 이들은 최루탄으로 인해 눈물을 흘리고 경찰의 무력진압에 쓰러지기도 하지만 계속해서 외친다. ‘광복홍콩 시대혁명’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뀨뀨

 

프로그램 노트

“홍콩은 한 개의 국가, 두 개의 제도라는 길을 향해 전진한다.” 하지만 현재 홍콩은 체제 내의 어떠한 오류도 지적할 수 없는 독재 권력의 땅이 되어가고 있으며 홍콩을 사랑하는 민주화 인사들은 홍콩을 떠나 타국으로 망명하고 있다. 홍콩 도심의 거리는 연기와 방독면, 고함으로 가득 찼고 평범한 출퇴근 길의 지하철역은 피신의 공간이 되었다. 무엇이 홍콩인들의 일상을 앗아갔는가?

과거, 중국 공산당 정부는 영국 정부와 홍콩반환협정을 맺으며 홍콩이 중국령이 되는 1997년부터 2047년까지 50년간 일국양제, 즉 중국과 홍콩에 서로 다른 체제를 유지할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그 이후 일국양제의 약속을 서서히 무너뜨렸다.

2019년에 ‘홍콩 범죄인 인도 법안’이 발의되었고 2020년에 결국 홍콩 국가보안법이 시행되었다. 이 법안으로 누군가가 홍콩 내에서 민주주의를 지지하거나 공산당을 비판하면 범죄인으로 규정되어 처벌 대상이 된다. 또한 처벌의 범위는 개인을 넘어 집단의 행동까지로 넓어졌다. 이러한 홍콩 국가보안법은 홍콩의 입법회를 거치지 않고 중국 공산당의 전국 인민 대표 회의에서 처리된다. 홍콩 국가보안법 하에서 홍콩의 민주주의는 거의 불가능하다.

영화 ‘동지’는 자유를 되찾기 위한 홍콩인들의 지난한 투쟁을 기록하고 있다. 홍콩은 현재 경찰들의 무력에 구호와 노래로 대항하고, 총과 최루탄을 물병과 우산으로 막아내고 있다. 이러한 투쟁 속에서, 그들이 지고 중국에 속한다고 해도 그들이 가만히 누워만 있지 않았다는 것을 역사가, 그리고 우리가 알 것이다. 홍콩인들은 서로를 밀어주고 끌어주는 ‘동지’들과 함께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투쟁에 함께할 ‘동지’들을 부르고 있다. 독재 권력에 대항하고 있는 홍콩과 연대하는 우리도 당신들의 ‘동지들’이며 홍콩이 자유를 되찾을 때까지 우리가 함께할 것이다.

서울인권영화제 프로그램 팀

 

인권해설

떨어지는 홍콩의 손을 잡아줘

작년 11월 9일, 서울 홍대입구 윗잔다리공원 인근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시위에 나섰다. 홍콩경찰에 쫓겨 의문사한 22세 청년 차우츠록을 추모하는 촛불을 밝히기 위해, 부는 바람을 막으려 촛불을 둘러싸고 동그랗게 웅크린 채 불을 붙이고 또 붙였다. 무대에서 연설을 하던 홍콩 민간인권전선 얀호라이 부의장은 사람들이 추모의 불을 붙이기 시작하자 말을 멈추고 무대에서 내려와 한동안 잠자코 바라보다가 노래를 함께 부르자고 제안했다. 참가자들은 종교와 국경을 넘어, 기독교도였던 고인을 추모하고자 <세인트 할렐루야>를 함께 불렀다. 이 모습은 1948년 제주 4.3사건에서 탄압을 피해 함께 지슬(감자)을 먹던 사람들을 연상시켰다.

집회 종료 후 참가자들은 걷고싶은거리로 행진해 ‘레넌월’을 세웠다. 도로 건너편에서는 홍콩경찰을 지지하는 ‘맞불 집회’가 열렸고, 아마 이 집회에 참가했을 이들은 레넌월을 만드는 사람들 앞에서 휴대폰에 ‘오성홍기’와 ‘One China’ 글씨를 띄우고 중국 국가를 목청높여 불렀다. 일부는 격앙되어서 항의와 욕설을 뱉기도 했다. 각자의 ‘동지’가 곁에 있었다.

작년 10월 5일 홍콩에서 마스크 금지법이 발효된 이후 시위 진압의 강도가 그 어느 때보다도 거세졌지만, 한편 한국에서는 연대의 열기가 아주 뜨거웠으며 11월에 정점을 이루어 언론보도도 많이 되었다. 비록 심층보도보다는 표면적인 마찰과 충돌상황에 초점을 맞춘 기사가 많았지만 대중의 관심을 환기하고, 장기간 싸우고 있는 홍콩의 시민들에게 힘을 주는 데 그 의의가 컸다.

많은 언론보도가 홍콩투쟁을 ‘중국 대 홍콩’으로 다루었지만 기억해야 할 점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 본토에서 많은 사람들이 홍콩으로 건너갔고, 홍콩인들은 중국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며 중국인들의 인권을 위해 매년 6월 4일에 촛불을 든다. 사회주의 국가를 표방하는 중국에서 국가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탄압당하는 노동운동가들에게 홍콩의 운동가들이 연대하고, 홍콩의 여성 단체는 중국의 성폭력 사건 문제 해결을 지원한다. 홍콩과 맞붙은 중국의 경제엔진 광둥성 일대는 홍콩시위와 나란히 노동쟁의가 불붙었다. 적대와 배척으로 이해할 수 없는 연결점들이 이 운동 속에 있다.

홍콩의 운동가들은 2005년 홍콩에서 열린 WTO 반대 시위에서 용감하게 싸운 한국의 농민들을 기억한다. 국경을 넘어 전 세계 민중의 삶과 권리를 지키기 위해 함께 투쟁 했던 연대의 기억을 가지고 있고, 그러한 교류의 기억과 함께 각국의 민주화운동 역사를 다시금 호출하여 현재화하기도 한다. 나는 이들이 말하는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대해 들으며 ‘박제된 민주화운동’이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한국인들도 좀처럼 생생히 기억하지 않는 일을 홍콩인들의 운동이 다시금 꺼내어 힘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홍콩 시위 청년과 광주 518 진압군 출신 목사가 만난 BBC 인터뷰에서 홍콩 청년은 말한다. “2014년 우산혁명 이후 홍콩은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서 떠나서 다른 나라에서 살고 싶었어요. 지금은 그런 생각을 했던 게 많이 후회돼요.” “‘고생 많았습니다.’ ‘우리가 다 알고 있습니다.’ 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하지만 당신들이 버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우리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홍콩보안법 반대 시위에서 홍콩인들은 “오늘 시위에 나오지 않으면, 내일은 나올 수 없다”고 외쳤다. 극심한 탄압 속 자살로 위장되어 살해당하는 것이 두려워 ‘자살하지 않겠다’는 유서를 쓰고 시위에 나가는 청년들이 있었고, 시위대에 대한 성폭력이 고발되었고, 무방비 상태의 시민이 실탄에 맞았고, 대학캠퍼스가 경찰에 포위되어 온통 최루탄으로 뒤덮였다. 무수한 폭력 속에서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홍콩보안법과 코로나19 감염 위기로 대규모 야외 집회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홍콩인들은 전세계를 연결하는 온라인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정치적 망명을 떠나다 체포되어 중국에 수감된 12명의 홍콩 젊은이들의 석방을 요청하는 공동행동이 전세계 32개 도시에서 열렸고, 이 기록을 홍콩의 온라인 집회에서 상영했다. 물리적 제약을 넘어선 기억투쟁이 절찬리 진행 중이다.

홍콩인과 한국인이 함께 개최한 작년 11월 공동행동의 명칭은 다음과 같다. “우리의 연결로 홍콩에 민주주의를”.

끊임이 없다. 세계에 동지가 있다.
그리고 세월호도, 한국도, 아직이다.

상현(한-홍 민주동행)

홍콩은 한국인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으로 해외여행을 갈 수 없게 된 2020년, TV에서는 해외여행이 자유롭던 시절의 여행 프로그램이 재방송되고 있다. 홍콩은 TV 여행 프로그램의 인기 도시였다. 동서양을 넘나드는 먹거리에 가까운 위치와 편리한 교통 등, 홍콩은 한국인들에게 인기있는 여행지였다. 반복적으로 홍콩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들은 코로나19가 종식되면 다시 홍콩을 방문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홍콩은 더 이상 TV 속에 있는 자유롭고 활기찬 도시가 아니다.

2019년부터 홍콩은 관광과 무역의 도시에서 억압과 저항의 도시로 바뀌었다. 한국 관광객들에게 익숙했던 거리는 최루탄 연기로 가득 찼다. 그 최루탄 연기마저도 2020년 국가보안법이 통과된 이후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홍콩 정부 그리고 중국 정부에 비판적인 활동을 했다면 홍콩 시민뿐만 아니라 외국인에게도 무차별 적용되는 국가보안법 때문이라도, 홍콩 시위에 연대했던 이들은 더 이상 홍콩을 방문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홍콩 시위는 한국인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았다. 이념과 세대를 뛰어넘는 지지였다. 소위 586세대들은 민주화운동 경험을 떠올렸고, X세대는 10대 시절에 좋아했던 홍콩 영화들과 1996년 연대 항쟁(혹은 사태)을 떠올렸다. 밀레니얼 세대는 촛불혁명을 투영했다. 심지어 노인세대는 중국의 억압에 반대하는 홍콩시위를 보며 반공의 추억을 소환했다. 조금이라도 홍콩시위에 관심을 가진 한국인이라면 각자 자신의 경험에 근거하여 홍콩시위를 바라보고 지지했다. 실제로 한국 시민들은 대학가와 거리에서 할 수 있는 연대 활동은 다 전개했다. 그러나 그 뜨거웠던 연대의 열기는 국회와 정부의 문턱을 넘지는 못했다.

홍콩의 저항은 중국을 향한 것이다. 그리고 중국은 한국에게 매우 특별한 국가이다. 한반도 분단체제의 한 당사자일 뿐만 아니라 이미 우리 삶 속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의 대학들은 중국 유학생들이 없으면 운영하기 어렵다고 아우성이고, 많은 한국기업들은 중국 수출로 코로나 19 상황에서 버텨내고 있다. 홍콩의 저항이 한국인들의 추억과 양심을 자극하더라도 현실이라는 벽을 넘을 수 있을지 자신하기 어렵다.

결국 홍콩은 중국으로의 주권반환을 앞두고 암울했던 상황을 그린 영화 <중경삼림>의 시절로 돌아갔다. 아니 이미 예정된 결과인지도 모른다. 주권이 주어지지 않은 한 도시의 운명은 700만 거주시민의 1/3이 넘는 시민이 거리로 나와도, 2019년 지방선거에서 시민들이 민주세력에게 보낸 압도적인 지지에도 바뀔 수 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국인들은 홍콩을 응시해야 한다. 이 영화들이 보여주는 홍콩의 풍경은 결국 우리의 과거이자 현재이자 미래이기 때문이다. 이 도시의 사람들과 어떻게 대화하고 연대할지는 계속해서 한국사회에 큰 물음을 던질 것이고 그 답은 쉽게 찾을 수 없다. 쉽게 찾을 수 없는 답을 계속 고민하면서 친숙했던 도시에 가해지는 억압을 지켜봐야 하는 고통이야말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고민하는 한국인들이 짊어져야 할 운명일지도 모른다.

나현필(국제민주연대)

 

감독

카나스 리우 감독 사진

카나스 리우 Kanas Liu

홍콩의 독립다큐멘터리 제작자로 문화연구를 전공했다. 홍콩의 시위를 영상으로 기록하는 사회 운동을 시작해 우산 혁명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2019년부터 홍콩의 송환법 반대 운동을 촬영하고 있다.

 

번역 고은영

번역감수 譚卓敏 Judy Tam(한-홍 민주동행)

 

장애인접근권 연출 권태(서울인권영화제) 해랑, 진영(한국농인LGBT)

한국수어통역 진영(한국농인LGBT)

자막해설 권태(서울인권영화제)

자막 혜지(서울인권영화제)

 

상영 일정

본 상영 11/22 10:00 ~ 11/23 10:00
앙코르 상영 12/1 10:00 ~ 12/6 10:00

 

라이브토크 – 관객과의 대화

12/1 20:00 서울인권영화제 유튜브 채널

스틸컷

댓글

  • 2020년 11월 23일
    익명

    영화 ‘동지들’을 보면서 영화 ‘택시운전사’가 떠올랐다.
    그당시 우리 사회의 모습을 오늘날 다른 모습으로 보는 것 같은 느낌.

    그리고 그때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되지 않고 멀쩡하게 돌아왔다면, 우리도 저렇게 싸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탱크를 활용한다는 계획도 있었다고 했었으니 수많은 희생자를 눈 앞에서 마주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저들의 모습이 낯설지도, 남일 같지도 않다.

    코로나 등으로 세계가 어수선한 요즘, 잘 지내고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에게도 ‘동지들’일 그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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